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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01: 185) [1차] 신을 믿으십니까?
1
별명 :
이름없음
작성시간 :
16-09-04 22:36
ID :
BLxNmb5FFamlU
본문
겨우 찾아온 봄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바람은 꽤나 쌀쌀했다. 난 이 세상에, 무능한 나에게 절망했다. 고졸에, 백수에, 취업은 안 되지. 찾아드는 초조함과는 별개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의 장례식이 열렸다. 교통사고였다. 며칠 간의 장례식이 끝나고,난 내 자신을 방구석으로 내몰았다.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쓰레기를 필요로 해 주는 사람 따위는 이 세상에 없고, 나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냥 죽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저 순간적인 충동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은,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불행이었는지 행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우리 집은 강 근처였고, 다리에 도착해 뛰어내릴 만한 곳을 찾기까지는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생을 끝낼 시간이었다. 난 난간 너머로 몸을 굽혔다.

"저기, 잠깐만요!"

"...네?"

"혹시, 신을 믿으시나요?"


------
1차창작 통합스레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건너왔어. 시작!
137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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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BLfrHY6RvG7F6

시선을 고정할 수가 없었다. 풀 한 포기, 건물 한 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회색빛 구름과 콘크리트 바닥만이 그 곳에 있었다. 목이 말랐던 것도 같았다. 발 밑의 상처가 말한다. 이건 나야. 상처의 말은 애매했다. 이곳은 「나」인 것인지, 나의 「상처」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 발치에 대고 물었다. 그리고 난 상처에게 비웃음당했다.

나는 너고.
너는 나고.
「나」는, 「너」는, 혹은 「우리」는.
이 세상이라고.

138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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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rHY6RvG7F6

나는 되물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뭐냐고. 이때쯤부턴 울먹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발 밑의 상처가 재차 비웃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앍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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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rHY6RvG7F6

얽 실수로 작성 눌러버렸다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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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rHY6RvG7F6

나는 되물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뭐냐고. 이때쯤부턴 울먹이고 있었던 것 같다. 발 밑의 상처가 재차 비웃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알고 싶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가 말했다. 나는 말이야.

그날 그 횡단보도의 반대편이고.
동생의 눈물이고.
너의 책임감이고.
동시에 「너」그 자체이기도 하지.
이제 좀 솔직해져도 되잖아?
아무리 날 감싸고 외면해도, 넌 내게서 도망칠 수 없어. 나는 이 세상인 걸.
뭐, 이렇게 말해도 넌 절대 날 마주하지 못하겠지만.
넌 진짜 쓸모 없구나.
너덜너덜한 주제에 강한 척이나 해 대고.
덕분에 이 모양 이 꼴이잖아. 피 나는 것 좀 봐.
존재하는 이유가 뭔데?
동생? 그 애가 널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
알량한 방어기제에 불과해. 자기합리화일 뿐이야.
아, 하나 더 늘었다.
나는 말이야.

너의 「절망」이야.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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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3+t25ewWlY

"정말 괜찮은 것인가? 아까부터 좀 멍한 것 같아서."
"...아, 미안. 그냥 좀 피곤했나 봐."
"그런가."

 그렇게 말해 놓고는, 넌 나를 의아한 듯한 눈으로 쳐다본다. 시선에 쿡쿡 찔리는 느낌이다. 적당한 변명인 것을 너는 분명 눈치챘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무슨 일인지 묻지 말아 주었으면 했다. 이 갈 곳 없는 절망을 듵키지 않도록. 나는 강한 사람이다. 형은 강한 사람이니까. 그대는 강하다. 그런 기대들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상처를 좀 더 감춰둘 필요가 있었다. 너는 손에 쥔 맥주캔을 내려놓았다. 가벼운 소리가 나는 것이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꽤나 붉어진 네가 휘청이는 듯 하더니, 이내 이 쪽으로 쓰러진다. 졸리다...취한 것 같군, 하고 네가 중얼거렸다. 응, 그런 것 같네. 어깨에 기대 오는 너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었다.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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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3+t25ewWlY

>>141 듵키지→들키지

밤 아홉 시. 저녁 아홉 시라고 불러도 괜찮을, 잠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그렇다기엔 이미 뻗어버린 사람도 있지만, 뭐 어떤가. 다른 두 명은 곯아떨어진 지 오래였다. 너는 나의 어깨에 뺨을 부비더니, 아래로 스르륵 내려가 무릎을 베고 누웠다. 취했구나, 하고 말을 붙이면 네가 고개를 끄덕인다. 칠흑 같은 앞머리를 손끝으로 흩뜨리고 있자니, 아래서부터 손이 불쑥 올라왔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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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3+t25ewWlY

왜 그러냐고 물으려 했는데, 네가 터진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통증이 욱신거리며 전해져 왔다. 아프지 않은가, 하고 네가 묻는다. 괜찮다며 웃는데, 어쩐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어쩐지 아슬아슬한 기분이다. 입꼬리가 떨린다. 너는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본다. 꿰뚫어보는 듯한 올곧은 눈이다. 그 붉은 색은 너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을, 영혼을 보는 것과도 같다. 그 말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네가 입을 연다. 다시 묻지. 정말 괜찮은가. 네가 웬일로 진지하다. 말문이 막혔다. 저런 눈 앞에선 거짓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드러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네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싫어서. 그렇기에 웃으며 말한다.

괜찮을 거야.
아마도.

그런데 왜 눈물이 나지.

144
별명 :
이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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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8AFVNghlYQ

기다리다가 포기하면 오는구나! 스레주 밀당 너무 어렵네(뭔소린지) 너무너무나 좋게 흥미롭게 잘 읽고 있어! 언제나 좋은 글 정말 고마워:D
건이도 현이처럼 안쪽?이 위태로운 사람이었구나8ㅁ8 136레스의 은유와 유추로 감정 묘사한 거 정말 좋다 한동안 계속 읽고 있었어...! 그리고 페리 되게 철 없이 중2병이기만 한 캐릭터일 줄 알았는데 속 깊고 강하다는 게 매력적이게 다가오네ㅎㅎ

145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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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lnhFtbPjO/w

>>144 정성스러운 레스 정말 고마워..!감정묘사가 좋다니 엄청난 칭찬을 들은 기분이야.건이도 현이도 위태위태하지!형제가 쌍으로 쿠크다스다. 다만 건이가 숨기는 걸 좀 더 잘할 뿐이야. 현이는 좀만 파고들면 멘탈 약한게 확확 드러나는데, 건이는 멘탈을 감싼 자아가 좀 더 단단하다고 해야하나..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잘 모르겠네. 자기 속이 너덜너덜한 만큼 주변인에게 매달리는 성격. 멘탈수치는 건이>현이. 그래도 건이는 나름대로 강해. 페리가 괜히 강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페리의 멘탈은 티타늄 합금이야! 평소에 하는 짓을 보면 마냥 가볍게 보이긴 하는데, 눈치와 멘탈이 만렙. 눈치라기보단 직관력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기도 해. 중2중2하고 철없는 평소 행실에 묻혀서 안 보이는 편이지만, 속을 까보면 작중에서 페리만큼 강하고 올곧은 캐릭터는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해. 이건 진짜야. 그 강려크한 보살력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뭐 어때. 과거 나올 때쯤엔 드러나려나..어쨌든 레스 고마워! 본의 아니게 밀당해 버려서 미안해지네ㅠ 요즘은 그래도 여유로우니까 자주 와 보도록 할게. 다들 레스랑 질문 많이 달아주고 가!

146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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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FrV8uHc1s0I

"울어도 괜찮네."
"아니야. 진짜 괜찮으니까..."
"조금은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런...!"
"그대가 아프다면, 언제든 이 몸이 안아줄 터이니."
"......"
"그렇게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말게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속에서 일렁이던 것이 어느 순간 흘러 넘쳐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미안, 꼴사나운 건 아는데, 멈출 수가 없어. 그 뒤론 계속 울었던 것 같다. 반쯤은 오열하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이렇게까지 운 건 그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그 날부터, 스스로를 먹혀버릴 것만 같은 공허에 시달려 왔다. 그 끔찍한 빈자리의, 텅 빈 세상의 구석에서 그저 말라 비틀어질 것만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가슴 한 구석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데,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서. 아픈데,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엄마는 죽었다. 그럼 현이는. 주위를 둘러봤는데, 그 애가 곁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현이에겐 의지할 수 없었다. 난 형이니까. 지켜야 하니까. 하지만, 그럼 난 누구를 의지해야 해? 누구한테 기대야 해?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난 혼자구나, 하고.

147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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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xX5gPoSPcxo

삼 개월 정도 전이었다. 마치 엊그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몇십 년 전에 있었던 일 같기도 했다. 그저 작년에는 함께 있었다는 사실과, 잊을 수 없는 모친의 기일이 그 기간을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그 순간의 기억 자체가 흐릿하다. 저도 모르게 지워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추측만 해볼 뿐이다. 저 아래 무의식에 묻혀 있는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사고의 장면이 직접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시작할 때쯤, 꿈에 나오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튕겨나오는 날이 늘었다. 무슨 행복한 꿈을 꾸든, 결과는 하나였다. 엄마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절망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꿈에서조차 봐야 한다는 것은 괴로웠다. 그런 밤들을 열다섯 번쯤 반복하고 나자, 잠이 오지 않았다. 의사는 불면증이라고 했다. 수면제를 처방받았지만, 먹지 않았다. 자고 싶지 않았다.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현실의 연장선이고, 절망의 밑바닥일 뿐이었다. 제 발로 그런 곳에 걸어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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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cGsIQGcd1Do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서 눈을 떴다. 잠시 졸았던 것 같았다.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낮인가 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빈 속이 쓰렸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뭔가를 먹은 기억이 없었다. 물이라도 마실까 싶었는데,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사고 이후 생활감각이 거의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했다. 자고 싶지도, 뭔가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병원에도 안 나가고, 출근도 안 하고 있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난 이 의지따위 찾아볼 수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었다. 다만 그것 뿐이었다. 생각만 하고 실천은 안 했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기운도 없었다. 이게 며칠째더라. 저 구석에 걸린 달력을 확인했다. 12월을 알리고 있었다. 작년 달력이었다. 이래서야 의미가 없다. 애초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더더욱. 침대 밑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웠다. 켜지지 않는다. 충전기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포기하자. 휴대폰을 툭 놓고 다시 드러누웠다.

149
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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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BLqq0JpsRYKiM

속이 쓰라리다. 목 아래부터 아랫배까지가 텅 비어서, 찬바람만이 나돌며 살을 베어내는 느낌이다. 이건 식사 여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깊은 공허이며 빈자리다. 평생을 함께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었던 가족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순간, 저도 모르게 그 날의 향취를 떠올리고 말았다. 피비린내다. 겨울날의 차가운 공기와 뒤섞인 쇠 냄새다. 후각을 기점으로, 죽어 있던 감각들이 차례차례 되살아난다. 요근래 억눌러 놓았던 기억들이 되돌아온다. 호흡이 안정되지 않는다. 횡단보도의 반대편. 붉게 빛나던 차량용 신호등. 트럭의 브레이크 소리. 현이를 밀쳐내는 엄마. 현이의 울음 섞인 외침. 그리고 일 초도 안 되어 들려왔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150
별명 :
★0On7c0W9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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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BLeKu+ytRLFMU

비명과 웅성거림, 비린내와 구급차의 소리가 뒤섞여 멀어지더니,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안 돼. 막아야 하는데.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사고의 현장은 내게서 떠나 있었다. 익숙한 천장이 눈에 비쳤다. 잠에서 깨어났다. 방이 어두웠다. 커튼 사이로 흐릿하게 비쳐들어오던 빛이 사라져 있었다. 꿈이었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던 때부터? 아니면 일어났던 것도 꿈이었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상한 희망 같은 것이 한 줄기 돋았다. 지금 이것도 꿈은 아닐까. 깨어나고 나면, 언제나처럼 가족들이 반겨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잤냐고 물어보고, 비몽사몽한 현이를 깨우고, 엄마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카페에 나가는 일상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 헛된 희망, 아니 그것울 넘은 환상에 가까운 무언가에 도취될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보내 왔던 삶이었다. 그 안에서 영원히 행복할 수 있도록,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었다. 난 잠시 고민했다. 깨어나다니, 그럼 어떻게? 그 순간 튀어오른 생각은 꽤나 위험한 것이었다.

죽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분명 깨어날 수 있을 텐데.

151
별명 :
★0On7c0W9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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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BLSEXbkRe98dg

꿈은 신기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가물가물한 경계에 걸친 상상인 것이다. 잠든 사이 저도 모르게 지어지고, 돌아가고, 무너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세계이자 주인의 내면이다. 꿈은 창조와 붕괴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고, 현실과 구분하지 못한 채 허우적대다 깨어난다. 어쩌면 난 아침이면 무너질 신기루에 매달려, 현실인 척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깨어나겠지. 하지만, 내가 믿는 내일이 꿈이 아니라 확신할 수 있을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반복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의 죽음이, 무너진 평화가 한낱 꿈이었던 것은 아닐까. 깨어나면 모든 게 끝나지 않을까. 머리가 핑핑 돈다. 지금 이 순간은 현실이 맞을까. 현실과 너무나도 비슷한 꿈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현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 고통이, 공허가 현실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스스로를 옥죄는 현실로부터, 뇌리를 떠도는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숨고 싶었다. 지쳤다.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차다. 이땐 어째서인지 웃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152
별명 :
★0On7c0W9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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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ID :
BLGrs2ZK+L2Tc

여기서 뛰어내리면, 확실하게 깨어날 수 있을까.
모두를 만날 수 있을까.
이것은 끝낼 가치가 있는 삶일까.
죽을 자격이 있기나 할까.
뛰어내리면, 죽을까?
죽으면 깨어날 수 있는 게 맞아?
깨어나면, 정말 모두를 만날 수 있어?
그 전에, 이건 꿈이 맞는 건가?
이렇게 아픈 게 현실일 리 없다고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떨리는 몸이, 흐르는 눈물이, 살을 에는 바람이 현실을 노래하고 있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는 죽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믿고 싶지 않아서 도망쳤다.
옥상은,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은 그 종착점이었다.
하늘이 검다. 별 하나 뜨지 않은, 무너질 것만 같은 밤이다.
결국 세상은, 약하디 약한 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이제 그만 받아들여.
발 밑에서 「상처」의 목소리가 들린 듯 했다.

153
별명 :
★0On7c0W9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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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ID :
BLNk70QAnQyEg

>>152 두 번째 줄의 모두를→부모님을.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서.

154
별명 :
★0On7c0W9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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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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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DK7DAdnFBAM

그 길로 집을 정리했다. 일종의 도피였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함께 있었던 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워졌다. 내게 있어 이 집은 기억 그 자체였다. 가슴 한 켠이 아린다. 25년을 이 곳에서 살아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소중한 곳이다. 모든 것에 추억이 배어 있었다. 그렇기에 도망쳤다. 행복한 꿈에 빠져들어 죽어가고, 괴로워 할 바에야 차라리 떠나는 것이 맞았다. 이 고통애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했다. 현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열 번 넘게 울렸다. 받지 않는 것일까. 그저 하릴없이 기다렸다. 장례식 이후론 두 달만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상주가 되어선 정신없이 친척들을 맞아들였다. 젊은 나이에 안 됐다거니 어쨌다거니, 어쨌든 위로받았던 것 같다.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괜찮은 척 했다. 괜찮다고, 고맙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반쯤 버릇이 되어버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가면이 어느새 내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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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좋은 형과 좋은 아들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건 머지않아 연기가 아니게 되었다. 형은 멋진 사람인 것 같아. 어린 현이가 쭈뼛거리며 건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난 진짜로 멋진 사람이 되었다. 얼마나 기뻤던 지 모른다. 인정받는 것이 좋았다. 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원래의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하지도 못한 채, 껍질을 조금씩 키워갔다. 그렇게 덮어쓰기 시작한 가면이 너무나도 커져 폐부를 찔렀다. 나는 가면이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저 안고 지탱해줄 뿐, 안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날 안아주던 사람은 이젠 없다. 그리고 이젠 그 흔적에서조차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무책임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역시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다른 종류의 안정이 필요했다. 그 순간 신호음이 끊겼다. 연결됐다.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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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아, 형..."
"그래. 우리 현이 잘 지내고 있었어? 형 내일 가려고."
"뭐, 그럭저럭... 집 더러운데, 여기서 지내도 괜찮겠어?"
"당연히 괜찮지! 집은 치우면 되고!"
"마음대로 해. 예전 집은 어떻게 했어?"
"팔기는 좀 그래서, 일단 정리하고 월세 줬어. 근데 진짜 거기서 살아도 돼? 옆집도 한 곳 비어 있는 것 같았고."
"됐어. 돈 아깝게... 방도 있고, 와도 돼. 그리고."
"그리고?"

"...외로우니까, 같이 살면 좋잖아."

"아."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꿰뚫린 듯한 느낌이었다. 현이는 별 생각 없이 한 말일 심산이 컸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랬구나. 외로웠구나. 수화기 너머는 여전히 조용하다. 말한 지 얼마나 지난 것일까. 침묵은 싫다. 무언가 말해 감추지 않으면 속을 읽히기 십상이었다. 그대는 눈에서 모든 것을 드러낸다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감추지 못하는 것은 미숙함일까 순수함일까. 그렇다면 그건 약한 것일까. 지금으로선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무엇으로 정의내리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나다. 약하고, 무너져버릴 듯한 나인 것이다. 난 작게 웃었다.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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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고통애서→고통에서. 두 달→석 달. 아이고 중요한 부분을 틀렸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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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지? 그러면 내일 오전에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응, 그렇지. 묘한 동질감이 마음을 적신다. 독에 젖어들어가는 듯 하다. 외로웠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그 사실에 안도했다.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하물며 동생의 고독을 위안거리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본능적인 합리화에 가까웠다. 외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해,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잡아 늘려서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요컨대 단순한 동일시다. 전화를 끊었다. 셋이서 찍었던 사진이 배경화면에 떠 있었다. 바꾸는 걸 잊고 있었다. 잊으면 안 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기억함으로써 도망친다. 잊음으로써 등을 돌린다. 어느 쪽이든, 난 그 날의 사고 현장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마주할 방법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그저 뒤돌아 설 뿐이다. 미안해요. 견딜 수 있을 때까지만 도망칠 테니까, 너무 슬퍼하진 말아 줘요. 전력으로 멀쩡한 척 하며 웃을 거예요.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도록. 좋은 형이 될 테니까. 좋은 사람이 될 테니까. 지켜봐 줘요, 엄마. 배경화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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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배경화면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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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혼자 있기 싫었어.
페리우스: 그렇군."
이 건: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어.
페리우스: 이해하네.
이 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누구 탓도 아니라고 현이한테 말해 줘야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더라고.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는데, 기대도 된다는 말을 들어버렸어. 어제까지 죽으려 했다던 애한테. 그건 내가 해야 될 말이었는데, 사과해야 할 건 나였는데.
페리우스: 그것으로 됐네.
이 건: 미안해. 이런 얘기나 하고... 최악이네.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것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견딜 수 없다.
그럼에도, 날 향해 웃어 주는 네가 있어서.
아직 세상을 놓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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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두번째 줄 따옴표...오타... 오타 때문에 환장하는 스레주가 시험을 망치고 돌아왔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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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죽고 싶지 않아.
페리우스: 살아가게.
이 건: 하지만, 이렇게 아프고 싶지도 않아...
페리우스: 그렇다면, 잠들게.
이 건: 그걸로 될까.
페리우스: 그렇네.
이 건: ...안겨도 돼?
페리우스: 얼마든지, 그대가 원하는 만큼.
이 건: 고마워.

이 품에서, 그대가 달콤한 잠을 취할 수 있도록.
그저 그대를 끌어안을 뿐이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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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우스: 나는, 그대의 몰락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 건: 걱정 끼치고 싶지는 않아... 무너질 지도 모르겠지만, 페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페리우스: 역시 그렇지 않은가. 그건 그대가 강하다는 증거네.
이 건: ...강하지 않아... 난 그냥.
페리우스: 알고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되네. 안기고 싶은 만큼 안기고, 울고 싶은 만큼 울게나. 하고 싶은 말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네.

밤은 길고, 시간은 넘칠 정도로 있으니.
「신」의 「영원」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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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그 날 이후로 언제나,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어.
페리우스: 지금은 괜찮은가.
이 건: 지금도 아파... 계속 안고 있어 줘.
페리우스: 어리광쟁이군, 그대는.
이 건: 미안. 하지만, 이럴 수 있는 사람은 페리밖에 없는 걸. 싫으면 그만할 테니까.
페리우스: 싫지 않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네.
이 건: 정말?
페리우스: 정말이네.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그대는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네.
이 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으니까.

행여나 네가 나를 떠날까 봐. 미워할까 봐.
아니, 네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래.
날 바라봐 줘. 인정해 줘. 사랑해 줘.
그걸 위해 얼마나 많은 가면을 썼는지, 무너지는 마음을 세워댔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하지만 어쩐지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 마음을 너에게 맡겨도 될까.
너를 가슴에 담아도 될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치는 느낌이 들어서,
너를 좀 더 세게 끌어안게 돼.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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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도망쳤어.
페리우스: 그것으로 그대가 행복하다면 괜찮네.
이 건: 잘 모르겠어... 불행을 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페리우스: 그렇다면,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이 건: ......글쎄.

애초에 그건 불행이었을까.
불행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느낌이었지만, 뭔가 다른 게 있을 법도 했는데.
그걸 뭐라고 하지.
끝없이 가라앉아 흩어지는 감각을, 뭐라 형용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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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불행하다고 하면 어떡할 건데?
페리우스: 안아 주겠네.
이 건: 행복하다고 하면?
페리우스: 안아 주겠네!
이 건: 뭐야 그게.

네가 안아 준다면, 조금 행복해질지도 모르겠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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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행복한 것 같아.
페리우스: 정말인가?
이 건: 안 물어봐도 알잖아, 페리는.
페리우스: 알기에 물어보는 것이네.
이 건: 정말이야, 아마도.
페리우스: 애매하지 않은가.
이 건: 확신할 수 있는 마음은 잘 없으니까.
페리우스: 이해하네.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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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우스: 그대는, 조금만 덜 짊어져도 괜찮을 것 같네.
이 건: ...되려나, 그게.
페리우스: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불가능은 없네.
이 건: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변해야 할까.
페리우스: 그대가 바라는 것은 그저 마음일 뿐이지 않은가. 나아가는 것도, 정착하는 것도 전부 그걸 위한 것이 아니었나?
이 건: ......
페리우스: 책임감도 죄책감도 이렇게나 강하게 닿아 오는데, 나는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지?

그대는,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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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KPK37e2mA82

눈치채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그대에게 확신받아야만 했다.
진심이 아니어도 좋다.
진심이어도 좋다.
그대가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전해 주게나.
두려워하지 말고 온전히.
차근차근, 그대가 안심할 수 있도록.
그대의 「답」을 전해 주게나.
무엇이든 기꺼이 응할 터이니.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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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왔구나.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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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고마워..! 늦아서 화내는 사람은 없을까 걱정했는데, 환영해 주는구나(감격) 학기가 시작하고부터 정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있었어. 습관 되면 무서우니까 뭐라도 써야지 싶었는데, 정말 글이 하나도 안 나와서 때려칠까 하다가도 간간히 와서 한두개씩 남기고 갔다. 열심히 써볼 테니까, 언제라도 보러 와 줘♥ 피드백과 질문은 언제나 환영!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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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 줘. 떠나지 말고, 계속."

지금처럼 안아 줘. 얘기를 들어 줘.
뭘 해도 괜찮다고 해 줘.
어떻게 무너지고 아파도, 잡아 주겠다고 맹세해 줘.
혹여나 무너져도, 그게 너의 품이라면 그걸로 됐다고.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돼 줘.
그 자리를 지켜 줘.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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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대의 답이라면, 받아들이겠네. 맹세하건데, 떠나지 않겠네. 난 이 자리에서 그대를 지킬 것이며."

"「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구원」하겠네."

 불꽃 두 개와 마주보고 있었다. 네가 눈 앞에 있다. 붉고 선명한 동공 속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똑바로 담아냈다. 그런 눈이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울고 싶었다. 어쩌면 지난 석 달간 그 하나만을 바라고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안도의 눈물이 터져나온다. 고마워, 고마워.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불을 찾았다. 차가운 옥상에서,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그토록 찾아다녔던 안정이 네게 있었다. 너는 내 등을 몇 번 토닥이더니, 다시 한 번 끌어안는다. 체온에 허덕이고 있었다. 밤의 쌀쌀함이 녹아들어갔다. 어둠도, 고요함도 네 곁에선 물러나는 듯 했다. 넌 그렇게나 빛나는 사람이었다. 고마워, 정말로. 네게 받은 거대한 확신을 어루만지며, 너에게로 무너져내렸다. 오늘 밤은 이대로 있을까 싶었다. 내일이 되면 일어설 테니까, 그 때까지만 용서해 줘요. 아침은 한참 멀었다. 그럼에도 너와 함께하는 밤이기에,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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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돌아가면?"
"그 땐 옥상에 꽃을 심어 보는 게 어떨까. 화분도 잔뜩 놓고, 화단도 만들고.
"좋은 생각이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따뜻하게, 더 이상 춥지 않도록. 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안 졸려?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네 자세가 무너졌다. 피곤하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발음만은 꽤나 또박또박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와중에도 내 손을 놓지 않는다. 술 탓인지 원래 그랬는지,네 체온이 높았다. 깍지 낀 손이 따뜻했다.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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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기엔 아쉬운 밤이군..."
"졸리면 자. 침대 쓸래?"
"이대로 먼저 자면, 그대는 잠들지 못할 것이지 않나."
"안 그래."
"말에 신빙성이 없네... 선반의 약은 수면제가 아니던가. 뜯은 흔적조차 없던데."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일단 방으로 갈까 싶어 너를 안아들었다. 넌 달리 저항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자연스레 목에 팔을 감고 얼굴을 부비적대는 것이 영락없는 어린애다. 술기운 탓인지 네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대, 하고 뭐라 말문을 트는 입술이 마냥 부드러워 보였다. 방에 들어와 너를 침대에 눕히고 돌아서는데, 네가 옷자락을 살짝 붙든다. 그대, 이리로. 네 쪽을 보고 고개를 숙였는데, 다시 목에 팔이 휘감겼다. 이내 몸이 시트로 추락하고, 네가 파고들어 온다. 품이 넓네. 미약한 숨결이 가슴에 닿았다. 같이 자지 않겠는가. 너는 그리 말하며 씨익 웃어 보인다. 그런 네가 마냥 사랑스러워 고개를 끄덕이니, 이내 가슴께에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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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밤을..."
"잘 자."
"아직, 그대가..."

너의 목소리가 끊긴다. 너무 마셨어. 그리 중얼거리곤 네 머리칼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눈가의 문신으로, 술기운에 붉어진 뺨으로 천천히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 잠든 네 얼굴을 만지는 느낌은 묘했고, 사랑스러웠으며, 조금 불안했다.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근본이 확실한, 뇌리에 새겨진 공포였다. 시작부터 끝을 생각하게 된 것은 역시 그 날부터였을까. 나쁜 습관이 들고 말았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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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간사해서, 언제 떠날 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을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완전한 불가능도 없다지만, 그런 건 너니까 가능한 말이야.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고, 잠든 너를 지그시 바라본다. 계속될 것이란 믿음은 무색하고, 언젠가는 떠나기 마련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게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어서, 무서워. 평범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행복. 그런 걸 견딜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기만을 빌고 있었다. 페리. 덜덜 떨듯이 네 이름을 불렀다. 그대, 하고 네가 작게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잠든다. 밤이 깊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말야, 페리, 난 별을 찾은 것 같아. 언제까지고 빛나기를 바라. 바로 이 곳에서.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어.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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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이 현: 머리 아파...윽...(부스스 일어남)
이 현: 내 방 침대..? 옆집에서 잤던 것 같은데, 형이 옮겨 놨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제 분명 뭔가 엄청 징징댔던 것 같은... 아.(화아악)

내가 미쳤지 정말.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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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Pof3JHjOGVg

이불킥

이 현: 안기고 울고, 진짜 그냥 죽었어야 했어. 쪽팔려서 얼굴 어떻게 보냐고... 울고 싶다.
이 현: ...뭐 됐나. 어차피 안 보면 그만인 거고. 신경씅 필요 없잖아.

하지만 어째서일까.
당신의 향취가 이상하게도 계속 떠올라서.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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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오타. 씅→쓸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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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Pof3JHjOGVg

이 현: 속 쓰려... 싫다 정말.

그런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데.
시끄럽고 기운만 빠지고, 괜한 오지랖이나 부리고.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프지.
버릴 수가 없을 것 같잖아.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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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서 등장) 난입 피드백 레스다!! 건이랑 페리 너무 사랑스럽다 정말 너무 사랑스러워! 귀여워! 얘네들 정말 이 연약하고 귀여운 사람들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니 괴로워도 좋지만..(??) 그래서 앞으로 현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두둥! 기다릴게:D
스레주 문장 점점 더욱 맘에 들어서 심장이 아파.  늦더라도 짧게라도 와주면 기뻐 날뛰는 사람이 있어9 일단 나부터 열심히 읽고 있으니까 응응.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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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ny1025/WM5k

> >>182 칭찬 정말 고마워...! 누워서 읽다가 굴렀다. 진짜야. 자주 오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나 띄엄띄엄 와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게 정말 너무 기뻐. 그래서 연약하고 귀여운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허헣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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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ny1025/WM5k

머릿속에서 이상한 갈등이 일었다. 어딘가 쿡쿡 찔리는 느낌이 왜인지 수치스러웠다. 또다. 저 아래서 열기가 차오른다. 나 같은 걸 왜. 같이 있어서 좋을 게 있나.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끊어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애초에 가까운 사람이 몇 명 없었기에, 다가가는 법도 지우는 법도 알지 못했다. 무서워서, 귀찮아서. 그렇게 숨어들어가며 살았다. 가족들을 제외한 나의 인간관계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마저도 이젠 형 뿐이고. 왜 울고 싶을까. 왜. 뭔데 이렇게나 아플까.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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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ny1025/WM5k

고작 옆집 사람들일 뿐이다. 그 사람은 뭐라 했던가. 소중한 사람? 내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 그러다가도 내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사실과, 그 품의 온기와 은빛 머리칼을 떠올리며 무너져내리는 것이었다. 당신의 온기는 위험했다.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달콤한 체향이, 머리칼을 쓰다듬던 그 손이 낯설고 간지러우면서도 아팠다. 무엇이든 괜찮다 속삭이는 흰 빛 속에서 홀로 미래의 고통을 보았다. 난 이렇게나 바보같은 사람이야. 당신은 날 견뎌낼 수 있어? 언젠가 떠날 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난 매달리고 있었고, 그 보랏빛 호수에 씻겨나간 듯 했다. 그래서 더 싫어. 내가 싫어. 이런 날 감싸는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냥 처음부터 다가가지 않는 게 나았다. 모르는 척, 아무 일 없었던 척 지나가면 끝날 일이다. 내칠 수 있을까. 입술을 질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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